은행 규제가 강화된 201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이 새로운 스트레스 테스트를 맞고 있습니다. Bloomberg, Financial Times, Wall Street Journal 등 주요 글로벌 미디어들이 최근 잇따라 이 시장의 잠재적 위험을 조명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라 AI라는 구조적 변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조 7,000억 달러, 너무 빠르게 커버린 시장

사모대출 시장의 규모는 현재 약 $1.7조(약 2,300조 원)로 추산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바젤 III 등 강화된 자본 규제에 묶이면서, 중소형 기업 대출 시장의 공백을 사모 펀드들이 메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Blackstone, Apollo Global Management, Blue Owl Capital, Ares Management 같은 대형 대체투자 운용사들이 급부상했고, 기관투자자와 개인 고액자산가들의 자금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급성장에는 늘 후유증이 따릅니다. PitchBook 데이터에 따르면 사모대출 딜의 평균 레버리지 배수와 이자보상배율이 점차 악화되는 추세이며, Moody's는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의 연체율 상승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유동성의 착시, 환매 압박이 드러내는 구조적 결함

사모대출 펀드의 근본적인 구조적 약점은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입니다. 투자자에게는 분기별 혹은 반기별 환매 창구를 제공하면서, 실제 기초 자산인 기업 대출은 5~7년 만기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불일치는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투자 심리가 악화되면 위험해집니다. Financial Times는 최근 복수의 사모대출 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급증하고 있으며, 일부 펀드가 환매 속도를 제한하는 '게이팅(Gating)'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Blackstone의 비상장 리츠 BREIT가 2022년 말 환매 제한을 발동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이후에도 대체투자 업계 전반에서 유사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환매 요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입니다. 유동성이 가장 높고 가치가 확실한 우량 자산부터 먼저 매각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남은 포트폴리오의 전체적인 질이 하락합니다. 이는 추가 환매를 촉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에 올인한 사모대출, AI가 흔드는 담보 가치

사모대출 시장의 또 다른 취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섹터 집중도입니다. PitchBookLCD(Leveraged Commentary & Data) 분석에 따르면,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에서 소프트웨어 및 기술 서비스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이상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하이일드 채권 시장에서 소프트웨어 업종 비중이 약 5%, 광의 레버리지 론 시장에서 13%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높은 집중도입니다.

이 소프트웨어 대출들은 대부분 반복 매출(Recurring Revenue) 기반의 SaaS 기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안정적인 구독 수익이 보장되어 양질의 담보로 평가받아 왔지만, AI의 등장으로 이 전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Wall Street JournalThe Information은 생성형 AI가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 구독 좌석 수 감소: AI 자동화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직원 수가 줄면서, 소프트웨어 좌석(Seat) 기반 라이선스 수요가 동반 하락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 Build vs. Buy 균형의 이동: GitHub Copilot, Cursor, 사내 LLM 도구 등의 보급으로 기업들이 고비용 외부 SaaS를 대체하는 자체 솔루션을 구축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용이해졌습니다. Gartner는 2027년까지 기업의 자체 AI 도구 개발이 기존 SaaS 구매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 밸류에이션 급락: 이미 복수의 중형 SaaS 기업들이 고점 대비 30~60% 이상의 주가 하락을 경험했으며, 이는 사모대출의 담보비율(LTV)을 악화시키는 직접적 요인입니다.

AI 고용 충격, 소프트웨어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

AI의 파급 효과는 소프트웨어 섹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McKinsey Global InstituteGoldman Sachs의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화이트칼라 직종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로보틱스의 발전은 블루칼라 직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고용 변화는 소프트웨어 시장에 이중의 압박을 가합니다. 기업의 직원 수가 줄면 기업용 소프트웨어 수요도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대형 은행들이 주니어 애널리스트의 상당수 업무를 AI 도구로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Bloomberg 보도, 물류 기업들의 창고 자동화 확대에 관한 Reuters 보도 등은 이 변화가 이론이 아닌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AI 도입 → 인력 감축 → 소프트웨어 수요 감소 → SaaS 기업 매출 악화 → 사모대출 상환 능력 저하라는 연쇄 구조가 형성됩니다. 업계 일부에서는 이를 'AI 디플레이션 루프(AI Deflation Loop)'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운용사에게 물어야 할 것들

이러한 환경에서 사모대출에 투자하고 있는 기관투자자와 개인 고액자산가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확인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포트폴리오 평가의 투명성: 사모대출은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자산 가치 평가가 운용사의 재량에 크게 의존합니다. 가치가 하락한 자산을 시의적절하게 장부에 반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낙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판별 기준입니다.
  • 위기 대응 역량: 금리가 제로에 가까웠던 시기에 설립된 펀드의 매니저 중 상당수는 실질적인 부도나 구조조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경기 하강기에는 파산법, 채권자 협상, 자산 회수 등의 실전 경험이 있는 팀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섹터 분산: 소프트웨어 편중이 높은 포트폴리오는 AI 구조적 변화에 특히 취약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에 분산 투자된 펀드를 선호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유리합니다.

2008년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현 상황을 2008년 금융위기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핵심 문제는 과도한 레버리지와 복잡한 파생상품(CDO, CDS)이었고, 시스템 전체가 연쇄 붕괴하는 양상이었습니다. 현재 사모대출 시장은 레버리지 수준 자체가 은행 시스템만큼 극단적이지 않으며, 시스템적 위험보다는 개별 펀드 수준의 스트레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유사점도 있습니다. 시장이 과속 성장하면서 심사 기준이 느슨해진 점, 유동성에 대한 착시가 존재하는 점, 그리고 외부 충격(당시 부동산, 지금은 AI)이 담보 가치를 예상보다 빠르게 침식시킬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사모대출 시장의 유동성 구조적 취약성과 AI가 촉발하는 산업 지각변동, 이 두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신용 리스크가 태동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위기를 예단하기보다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이 리스크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것이 투자자에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조 기사

본 기사는 위 공개 보도를 종합 분석한 것이며, 특정 투자에 대한 권유가 아닙니다.